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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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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갈매나무

김태형 지음

2018-01-07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b>지금 한국인은 왜 자존감에 집착하는가
진짜 자존감을 복원하기 위한 조건,
‘진짜’ 자존감은 타인을 볼 줄 아는 것이다!

자존감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순간, 우리는 자칫 잘못된 기준에 치중하는 가짜 자존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 자기능력을 과소평가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에서 높이 평가하는 가치에 집착하기 십상인 탓이다. 스펙이나 외모, 연봉 등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자존감을 높이는 수단에 매달리는 현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심리학을 현실에 적용해 우리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설파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가짜 자존감을 조장하는 세태를 가차 없이 비판한다. 또한 가짜 자존감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를 멈추려면 자존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진짜 자존감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것을 권한다. 그는 무엇보다 진정한 자존감 확립에는 건강한 관계가 필수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와 타인, 모두의 관계를 마음 뿌리부터 이해하는 노력을 거쳐야 비로소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심리적 기초 체력을 키울 수 있다”고.

저자는 매 페이지에서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존감을 방어 도구로 선택하게 된 현대 한국인의 마음을 철저히 분석한다. 그 출발점인 1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에서는 자존감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혐오와 차별, 세대 간 갈등 등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우리 사회에 팽배한 잘못된 가치 기준을 짚고 넘어간다. 2부 ‘누구의 자존감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한국인이 각 세대별로 어떤 자존감 문제를 겪고 있는지 살펴본다. 이로써 자존감은 특정 개인이나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며 성별과 연령을 넘어 모든 이가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3부 ‘가짜 자존감 VS. 진짜 자존감’에서 저자는 ‘가짜 자존감’의 정체와 폐해를 낱낱이 파헤친다. 무엇이, 어떻게 가짜 자존감을 부추기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떤 삶의 자세가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마지막 4부 ‘진짜 자존감은 타인을 볼 줄 아는 것이다’에서는 진정한 행복은 건강한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결론을 내리며, 타인과의 유대, 배려를 통해 진짜 자존감을 추구할 것을 조언한다.


<b>▷▷ 이 책의 특징

21세기를 사는 한국인의 자존감 진단
누구의 자존감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

한국 사회에서 왜 자존감이 화두가 되었을까?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자존감을 건강하게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유년기부터 사교육에 시달리고, 십대 청소년들은 입시를 인생 목표로 강요당하며, 청년들은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중장년들은 힘들게 가족을 부양했지만 은퇴 이후 무능력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노인들은 안정된 노후를 보장받지 못한다. 어째서일까? 저자는 각 세대별로 경험하고 있는 자존감 문제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자존감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타인으로부터의 존중이 바로 그것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러나 오늘날 물질만능주의와 외모지상주의, 스펙중심주의 같은 가치 평가 기준이 만연하면서 인간 존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경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가 높이 평가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세상은 나의 가치 판단 기준과는 상관없이 나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배척당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일이다. 결국 많은 이들이 그런 가치 평가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이를 받아들여 타인과 나를 평가하면서 살아간다. 한국인들이 자존감 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이로 인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타인으로부터의 존중은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만일 누군가가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당연히 그를 싫어하거나 증오하게 될 것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혐오’라는 단어가 신문이나 뉴스에서 심심찮게 등장할 정도로,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기보다 혐오하는 데 더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 부모와 자식, 남성과 여성,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는 세태가 개개인의 자존감을 손상시키고 급기야 갈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저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존중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자신을 비롯해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며, 높은 자존감을 가질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너무나 쉽게 ‘자존감을 높이라’고 서로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우리 사회 자존감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며, 서로가 서로를 제대로 존중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것을 권한다. 이로써 한국 사회에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진정한 첫걸음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부당하게 자존감이 박살나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국’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무모한 자신감으로 콤플렉스를 감추느라 바쁘다. 심리학자 김태형의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거짓 자존감’을 속 시원히 발가벗기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말한다. ‘정신만 차리면 못할 건 없다’는 얕은 처방전에 지친 이들에게 권한다. _ 오찬호 (작가, 사회학연구자,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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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위한 심리학 공부
가짜 자존감 VS. 진짜 자존감

남과 비교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사회적 비교란 본래 우리의 중요한 인식 수단이며 이를 하지 않고 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비교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잘못된 기준으로 비교한 결과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문화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처럼 돈과 스펙을 기준 삼아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병든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존감의 손상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번 사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높아질까? 그렇지 않다. 저자는 이런 자존감을 이른바 가짜 자존감으로 분류한다. ‘가짜 자존감(pseudo self-esteem)’이란 실제로는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높게 평가하는 데서 비롯되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쾌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회적 쓸모나 기여도와 아무 상관없는 것들을 기준 삼아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가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도구를 획득하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예를 들면 학생의 경우에는 성적, 여성에게는 외모, 직장인에게는 연봉이 존중받기 위한 대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명품, 외제차, 학력, 지위나 명예도 이러한 도구로 간주된다. 잘못된 사회 풍조로 인해 사회적 가치 평가의 기준이 완전히 뒤흔들린 것이다. 심리학자로서 사회적 흐름과 개개인의 심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저자는 이러한 현 시점에서 자존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과정이 바로 가짜 자존감과 진짜 자존감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가짜 자존감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를 멈추려면 자존감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즉, 돈이나 스펙 따위로는 자존감을 진정으로 확립하거나 향상시킬 수 없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심리학적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여 진짜 자존감이 우리 마음에 어떤 힘을 불어넣어주는지를 깊이 있게 설명한다. 동시에 가짜 자존감에 중독된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자존감이 무너지면 우리의 감정과 욕구가 어떻게 비뚤어지는지를 자세히 살펴본다. 내가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자존감을 보살펴야 하는지, 자기수용과 자기사랑, 자기존중을 통해 자존감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활동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려준다.
가짜 자존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나 자신과 똑바로 대면할 용기를 내는 것과 같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왜곡된 자기개념의 교정, 부정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자기 현실의 인정, 자기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저자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기평가는 곧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나부터 나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존중할 수 있어야 타인에 대해서도 같은 자세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통적인 혈연과 연고 중심의 공동체가 사라져 간 자리에 자유의지와 계약에 기반을 둔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껍데기뿐인 가짜 자존감이 아닌 내실 있는 진짜 자존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바로 이 진짜 자존감이 독립적이면서도 타인과 연대할 수 있는 공감형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매 페이지마다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_ 윤인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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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자존감을 복원하기 위한 조건
진정한 행복은 건강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스스로를 ‘싸우는 심리학자’라고 일컫는 저자 김태형은 책상 앞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마음 체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며 상담과 강연을 활발히 해왔다. 이 과정에서 자녀 세대부터 부모 세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 고민을 들으며 현대인들에게 무엇보다 진짜 자존감 회복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구나 오늘날 자존감과 관련된 정제되지 않은, 과장된 논의들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범람하는 추세를 지켜보면서 자존감에 대한 정확한 정리가 필요하며 자존감 운동이 갖는 의의와 한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느꼈다. 마침내 그는 이 책을 통해 이런 바람을 실천으로 옮긴다. 단순히 마음 수양을 하라는 식의 감상적인 위로가 아닌,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언을 매 페이지마다 담아낸 것이다.

저자 특유의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문체 역시 이 책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우리 사회의 흐름을 짚어내고 문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런 글쓰기의 매력이 특히 빛을 발한다. 저자는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공동체가 무너지고 개인화, 원자화된 사회에서 고독이 최대의 문제로 부상하는 과정을 낱낱이 들여다보며, 현대인이 자존감을 방어 도구로 선택하게 된 원인을 찾아본다. 아울러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 부모들과의 생생한 상담 사례를 덧붙여가면서, 자존감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할 것을 강조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만으로 자존감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론에 이르러 저자는 진짜 자존감을 복원하기 위한 조건으로 타인과의 연대, 건강한 소속 집단을 제시한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갖고 있던 내담자가 상담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깨달았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여기까지 도달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담자가 상담실에서 나왔을 때 정작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어떻겠는가. 가족과 친척, 친구들은 여전히 취직 못한 그를 비난하고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사람들한테 무시당한다면, 그의 결심은 계속 유지되기 어렵지 않겠는가?
혼자서 자기 수련을 열심히 해봤자 나와 타인을 공정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회복하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연대와 실천이 함께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오히려 개인의 자존감만 더 상처받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악순환을 피하기 위해 부모와 자녀가, 남성과 여성이, 노인과 청년 세대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건강한 관계가 확립되는 순간부터 모두의 자존감이 건강해지기 위한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자기 치유 이후 마음 체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실천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자존감에 관한 베스트셀러에서 알려주지 않는 강렬한 행동 원칙이 살아 있다.


<b>▷▷ 주요 내용

자존감 낮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악순환
젊은이들이 공공장소에서 한마디 하는 노인에게 공격적으로 맞받아치는 모습은 적잖이 관찰할 수 있다. 이런 젊은이들을 예의 없다며 욕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젊은 세대가 어른 세대로부터 존중받으며 자랐다면 노인들을 지금처럼 혐오했을까?” (...) 인간관계의 패턴은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자식을 존중해주었다면, 그 부모는 노인이 되어서도 일관되게 자식을 존중해줄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국의 젊은 세대는 어렸을 때에도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에게 혐오를 표현하고 증오와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부모에게서 존중받지 못하며 자라난 자식 세대의 자존감은 높을 수 없다. 존중받지 못한 사람에게 억지로 타인을 존중하라고 배려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젊은이들의 노인 혐오 근저에 자식을 존중할 줄 모르는 자존감 낮은 부모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자식 세대 간의 충돌이 숨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본문 28~29페이지 중에서)

<b>한국 사회는 자존감을 얼마나 보장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자존감은 유전적인 산물이 아니고 순수하게 개인적인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사회적인 산물에 가깝다. 사실 사람이 사회적 존재가 아닌 동물이었다면 자존감 문제는 아예 제기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이 사회적 쓸모가 있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기본 욕구가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심리이다.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사람의 본성적 열망이 곧 자존감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를 떠나서는 자존감도 없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건전한 사회(The Sane Society)》라는 저서에서 인간 본성의 실현을 기준 삼아 건강한 사회와 병든 사회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인간 본성에 기초하는 기본 욕구들이 원만하게 실현되는 사회가 건강하고, 그 실현을 방해하거나 좌절시키는 사회는 병들었다는 것이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자기존중의 욕구는 인간 본성에 기초하는 기본 욕구이다. 따라서 건강한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자존감을 유지하고 높여나갈 수 있다. 반면 병든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자존감 손상이나 상실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자존감을 지켜주는 건강한 사회일까, 아니면 사정없이 파괴하는 병든 사회일까? (본문 88~89페이지 중에서)

<b>자존감을 조작하는 것이 가능할까?
일부 심리학자들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에게 자신의 가치가 높다고 반복해서 말하거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칭찬하라고 조언한다. 이런 조언처럼 가난한 사람이 매일 자신에게 “사실 나는 부자야. 잠깐 곤경에 처해 있을 뿐이야”라고 말해주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까? 물론 없다. 자존감을 높이지 못해 고민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진짜 자존감을 얻을 수 없다. 자존감은 주관적인 자기개념이나 평가의 산물이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와 경험에서 비롯된 자기개념과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자기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어린 시절에 자존감의 기초가 잘 닦이지 않은 사람은 대체로 자기개념이 왜곡되어 있고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며, 자기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악화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자기개념을 수정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자신의 장점을 찾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자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분명 튼튼하지 않은 자존감의 기초를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심리 치료는 자기개념이나 평가를 주관적으로 왜곡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개념의 주관적인 왜곡과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과도한 저평가를 객관적인 사실과 기준에 따라 정상화, 객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리 치료는 키가 175센티미터가 넘는 사람이 키가 작다는 자기개념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키가 보통이거나 큰 편이라는 자기개념으로 정상화시키는 것에 가깝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식으로 자기개념을 조작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본문 97~100페이지 중에서)

<b>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무력감과 정반대로 낮은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존중받기 위한 도구에 집착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도구를 획득하면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이 또한 결국 가짜 자존감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존중받기 위한 도구를 획득하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존중받기 위한 도구란 한국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들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의 경우에는 성적, 여성의 경우에는 외모, 직장인의 경우에는 연봉이 존중받기 위한 대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명품, 외제차, 학력, 사회적 지위 등도 이러한 도구로 간주된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각종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따는 데 열심이다. 스펙 쌓기가 취업 준비생들의 필수 코스이기라도 한 것처럼 당연한 과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스펙에 집착하는 건 취업 준비생들만이 아니다. 직장인이든 아니든, 성공했든 아니든 우리는 누구나 더 좋은 스펙으로 자신을 겉치장하는 데 관심을 둔다. 가령 전월세를 살면서 무리하게 외제차를 구입했다가 카푸어로 전락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돈과 재산 같은 소유물에 집착한다.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서 스펙에서 해방되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을 사거나 비싼 명품, 값비싼 그림 등을 소유하고, 국회의원, 방송인 같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인기를 얻으려고 발버둥 치기도 한다. 이처럼 가짜 자존감의 도구를 획득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죽는 순간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가짜 자존감을 향한 맹목적인 질주를 멈추려면 자존감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즉 돈이나 스펙 따위로는 자존감을 진정으로 확립하거나 향상시킬 수 없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했다면 자기 치유를 통해 손상된 자존감을 어루만져주고 자존감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활동을 시작하며, 그 과정에서 건강한 이웃들과 연대해야 한다. (본문 110~111쪽 중에서)

<b>어차피 남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왜 사회적 비교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마음에 더 심한 상처를 입고 우울해지는 것일까? 사회적 비교를 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기준에 따라 사회적 비교를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직도 비정규직이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같은 말을 들으면 누구든 기분이 나빠지거나 우울해지고 화가 날 것이다. 사람들은 직업이나 돈과 같은 기준으로 비교를 당하면 억울해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우리 모두,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사람을 직업이나 돈으로 비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이라고 무시당하면 즉각 무의식적으로는 ‘왜 정규직이 나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왜 내 직업을 가지고 나를 무시하는 거야?’라고 반발한다. (...)
사회적 비교가 본의 아니게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잘못된 기준으로 사회적 비교를 한 결과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무시하고 학대하는 문화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그의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직업이나 돈 같은 잘못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곧 그 사회가 불의한 사회이자 병든 사회임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아주 낮은 평가를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오히려 떵떵거리며 큰소리를 치는 본말전도, 가치역전의 사회라 할 수 있다. (...)
‘사회적 비교’ 그 자체는 결코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기준으로 사회적 비교를 하고 그 결과 에 따라 사람을 차별 대우하는 것이 잘못이며, 이야말로 자존감의 요건인 자기존중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건강한 자존감을 세우는 첫걸음은 사회적 비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시작될 것이다. (본문 201~202페이지 중에서)

<b>진짜 자존감은 타인을 볼 줄 아는 것이다
내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가는 무척 중요하다.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이라는 영화가 있다. 남보다 통통한 일곱 살 소녀 올리브는 어린이 미인 대회에 나가기로 당차게 결심하고, 가족들은 올리브를 응원하기 위해 다 함께 대회가 열리는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다른 참가자들이 만만치 않다. 어른처럼 화려하게 화장하고 머리를 부풀린 참가자들 사이에서 행여 올리브가 기죽을까 봐 걱정된 아빠는 딸에게 선발 공연에서 빠지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엄마는 올리브가 있는 모습 그대로 살도록 내버려두라며 반대한다. 마침내 올리브는 무대에 올라가 다소 충격적인(?) 춤을 춘다. 청중과 심사위원 들은 올리브의 춤에 격분하며 엄마아빠에게 당장 아이를 끌어내리라고 요구하지만, 가족들은 도리어 무대로 다 같이 올라가 올리브와 함께 신나게 춤춘다. 청중과 심사위원 들에게 혹평을 받은 올리브의 자존감은 어떨까? 항상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는 한 이 아이의 자존감은 건강하지 않을까?
이 일화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어떤 경우에도 나를 수용해주며 사랑해주고 존중해주는 소속 집단의 존재는 잘못된 사회가 강요하는 스트레스를 치유해주고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굳건히 고수하도록 돕는다. 즉 선한 이웃들과의 굳건한 연대나 건강한 소속 집단은 자존감의 수호자이자 중요한 원천인 것이다. (본문 218~219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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